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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작 배우' 이병헌 "영화 선택의 기회 주고 싶었다"

김지수님 | 2017.03.07 14:42 | 조회 87

 


이병헌(47)의 연기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해가 거듭될수록 깊어지는 그의 눈빛과 원숙한 연기는 ‘믿고 보는 배우’의 표본이 된 지 오래다.

스크린을 장악하는 이병헌의 ‘포스’를 부정하는 것은 이제 불경이나 다름없는 일이 됐다.

이병헌에게 요새 ‘다작 배우’라는 수식어가 소리 소문 없이 붙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4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할리우드 영화 ‘미스컨덕트’ ‘매그니피센트 7’ 두 편과 한국영화 ‘밀정’ ‘마스터’가 잇달아 선보였다. 2년 전에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협녀, 칼의 기억’ ‘내부자들’ 3편이 관객들과 만났다. 2년 동안 그의 출연작 7편이 상영됐다.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달 22일 ‘싱글라이더’가 개봉했고, 김윤석 박해일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호흡한 영화 ‘남한산성’도 여름께 개봉 예정이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이병헌도 ‘다작 배우’라는 호칭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 나름의 소신을 드러냈다. 그는 “많은 영화에서 같은 배우만 보인다는 점에서 딱히 할 말은 없다”면서도 “관객들이 새로운 배우들을 선택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 영화라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의 근거는 ‘싱글라이더’다. 그는 “영화적 다양성” 측면에서 출연을 결심했단다. 이병헌은 “‘싱글라이더’는 흥행 대작이거나 오락 영화가 아니”라며 “관객 수에 대한 욕심보다는 영화에 꼭 출연해야겠다는 욕심이 더 컸다”고 말했다. 그에게 “시나리오가 충격”이었다. 시나리오 초안은 대게 다듬어지지 않은 채 배우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이주영 감독이 직접 쓴 ‘싱글라이더’의 각본은 한 군데도 고칠 필요 없이 “다 세공 되어 나온 느낌”이었다. 전체적인 스토리가 탄탄한 데다가 완성도까지 높았다는 게 이병헌의 설명이다.

그는 “나 자신도 요새 천편일률적인 영화들에 출연했다”는 솔직한 고백도 했다. “비리 검찰이나 사기꾼 등의 시나리오가 많아졌고, 행복하게도 내게 많이 온다(웃음)”고 덧붙였다. 그는 그런 현실에 아쉬움을 느낀다고 했다. “요즘은 영화가 너무 한 쪽으로 편식하는 느낌도 듭니다. 너무 비슷한 시나리오들이 많아 놀랄 정도니까요. 그래서 ‘싱글라이더’ 시나리오에 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이병헌은 ‘관객들도 새로운 영화에 목마를 때가 되지 않았을까?’하는 시점에 ‘싱글라이더’를 만났다고 했다. 그 역시 배우로서 이전과는 다른 시도에 갈증을 느끼던 차였다.

이병헌의 말처럼 ‘싱글라이더’는 화려한 액션이 스크린을 수놓거나 호화 멀티캐스팅으로 위세를 자랑하는 영화가 아니다. 부실채권 사건으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증권회사 지점장 강재훈(이병헌)의 시선을 따라가며 한국사회의 맨 얼굴을 그려간다. 호주로 보낸 아내 수진(공효진)과 아들을 그리워할 틈도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는 재훈은 이 시대 한국 중년 남성의 자화상이다. 재훈은 밀려오는 막연함과 먹먹함으로 호주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시드니로 향한다. 영화는 그렇게 존재에 회의를 느끼는 재훈의 쓸쓸한 여정에 동행한다. 이병헌은 “상처를 갖고 사는, 지금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영화에 출연하는 것만으로 행복했다”고 했다. 백발의 노인이 돼 배우로서 자신을 돌아봤을 때 “인생작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영화”라고도 평가했다.

범죄 오락 영화들이 관객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 과열 경쟁을 펼치는 지금, ‘싱글라이더’는 남다르다. 33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의미 있는 흥행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병헌의 섬세한 감성 연기와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시드니의 관광명소 하버브릿지에서 보여주는 삶의 의미를 잃은 남자 재훈의 처량한 눈빛은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재훈이 아내가 잠든 방에 몰래 들어갔다가 창문에 비친 자신을 본 뒤 무너지는 모습에선 가슴이 저민다. 더 이상 가족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알게 되는, 절망의 순간을 표현하는 게 어찌 쉬웠으랴. 그는 시나리오를 보며 울컥했던 바로 이 장면을 “관객에게 내가 느낀 그대로의 감정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재훈의 심정을 보듬듯 호주의 자연 소리를 배경 삼아 정적인 시퀀스들을 완성했다. 원숙한 영상미와 더불어 이병헌의 표정만이 스크린을 감싼다. 그만큼 대사가 거의 없다. 영화 촬영을 다 끝내고 미완성된 영상을 본 이병헌조차도 깜짝 놀랐다. “이렇게까지 대사가 없었나?” 싶었다고 한다. 음악도 들어가 있지 않았으니 더 허전했다. “상업적으로 봤을 때 저나 감독에게는 용감한 도전이었죠”

인터뷰를 하는 내내 이병헌의 눈가가 촉촉했다. 영화 속 재훈이 오버랩 됐다. ‘100만불’ 짜리 그의 눈빛은 여전히 ‘싱글라이더’를 떠나 보내지 못한 듯 보였다. “정적이고 울림이 큰 영화를 원하는 관객들은 어쩌면 요즘 (상업)영화와 더 사이가 멀어질 수밖에 없겠구나 싶어요. ‘싱글라이더’로 그 허전함을 채우셨으면 합니다.”

출처 : 한국일보 연예기사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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