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영화입시/뮤지컬입시
프로가 되려면 프로에게 배워야 합니다.
현역에서 직접 검증된 프로페셔널한 트레이너가 지도합니다.
연극으로 기억하고, 현실을 반추하다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영화감독 차이밍량은 “나쁜 영화는 지구의 종말을 걱정하는 영화이고, 좋은 영화는 자신의 내일을
걱정하는 영화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좋은 연극은 어떤 연극일까. 수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기본은 객석에 앉은 관객이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연극이다. 연출가나 배우가 관객에게 직접 떠 먹여주는 것이 아닌, 관객이 생각을 이어가게 만드는 연극 말이다.
극단 작은 신화의 ‘우리 연극 만들기’ 프로젝트 선정작 <창신동>, 극단 연우무대의 ‘인디아 블로그’, ‘유럽 블로그’에 이은
여행연극 시리즈 세 번째인 <터키 블루스>, 다리정기공연시리즈, 여섯 번째 이야기, ‘당신의 시공간 속 그 장면을 켜라’
첫 번째 작품인 <앵화원>은 연극의 막이 내린 뒤에도 계속 생각나는 연극 중 하나였다.
■ 희생에 익숙한 <창신동>에 사는 이들의 체증을 반추하다
서민들의 궁색한 살림살이를 그대로 재현한 무대를 마주하고, ‘날 것의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키웠다.
오르막길을 올라야 마주할 수 있는 좁은 동네, 그 사이를 비집고 웅크린 채 몸을 누인 이들의 삶은 분명 녹록치 않아 보였다.
<창신동>엔 엄마의 자살로 홀로 남겨진 갓난 아기,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아이를 맡게 된 여인 연주, 그런 연주를 못마땅해 하는
배다른 남매인 오빠 현수, 국가가 앞세운 명분 앞에 노동을 착취당했던 (아기의) 할아버지 동식과 ‘창신동’을 떠난 그녀의 딸 정희.
또 다른 가난을 겪는 그들의 이웃, 재광 할아버지가 산다. 이들이 연극 무대 속으로 들어왔다.
연극의 막이 내리고, 생각의 실타래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희생에 익숙해져버린 창신동에서, 하루 그리고 또 하루를 시작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난 이들에게서 뭘 느꼈을까. 어떤 기억을 끄집어냈을까. 어느 지점에서 그들과 만났을까?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 60년대부터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거주지였던 창신동은 아직도 골목 골목마다
영세한 봉제 가게가 빼곡히 들어선 서울의 대표적인 서민동네이다.
벗어나려고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창신동이라는 좁은 동네에 사는 여인 연주의 삶이 주요 내용을 차지한다.
연주의 어머니에서부터 시작된 가난과 희생의 되물림은 현재의 연주, 제 2의 연주인 갓난 아기로 이어진다.
말 그대로 대책이 없는 삶의 모습이다. 그런데 연주는 이 곳이 너무도 편하다고 한다. 변하는 것 조차 버거운 것이다.
체한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을 연주가 바늘로 따주는 장면처럼, 가슴에 뜨끔 뜨끔 뭔가가 출렁거린다.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장면은 ‘바늘로 손 따기’ 장면이다. 창신동에 사는 이들의 체증은 커다란 가죽 바늘로 따도 내려가지
않을 것 같다. 열심히 사는 건 죄가 아니지만, 멍청하게 사는 건 죄가 될 수 있다. 연극은 이 지점에 대한 생각도 열어놨다.
연극을 보는 내내 70년대를 일군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박찬규 작가는 “서울의 마지막 공간‘이라고 부르고 싶은 창신동을 통해 고의적이든 자의적이든 우리가 지워 버리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얘기해보겠다”고 작의를 전했다. 원작에서 수정을 가했기 때문일까? 연주와 할아버지 동식의 관계가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는 점이 조금은 아쉬운 대목이다. 배우 정의순, 김왕근, 김문식, 이혜원, 박지호가 좋은 연기를 펼친다.
극단 작은신화의 <우리연극만들기>는 민간극단으로서 보기 드물게 국내 창작극 발굴의 의지로 1993년터 지금까지 23편의
창작 희곡을 꾸준히 무대에 올려 작가의 발굴과 작품의 수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로 열 번째를 맞이하는
극단 작은신화의 <우리연극만들기>는 박찬규 작가 김수희 연출의 <창신동>을 20일까지 정보소극장에서,
윤지영 작가 정승현 연출의 <우연한 살인자>를 31일∼11월 10일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선보인다.
■ 인생의 소중한 페이지를 불러온 연극 <터키 블루스> 그리고 ‘터키 우정’
“사람의 과거에는 늘 사랑이 존재한다. 실패의 기억들, 행복의 기억들, 혹은 애달프고 서운했던 기억들...그 기억들을 끈질기게 헤집고
들어가다 보면, 당시엔 이기심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진실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사랑이었을지 모른다는 진실...
이것은, 더 늦지 않게 용기를 낸, 그러나 이미 늦어버린...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다.”-<터키 블루스> 작가 이천우
작품 제목이 발표되고 나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왜 터키 블로그가 아닌 터키 블루스일까’였다. 연극을 직접 보고 나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지난 작품들이 인도 혹은 유럽 여행의 파편적 기억들을 블로그에 포스팅 하듯 그려냈다면, 이번 작품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빛바랜 기억 속 추억을 음악으로 불러내는 쪽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음악으로 시작된 우정을 또 다른 음악으로 되찾게 해주는 형식이다. 두 주인공이 ‘블루스 브라더스’ 였던 것.
그 안에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를 비롯한 고대 신화의 배경이 되었던 ‘터키’ 이야기가 녹아있다.
연극 <터키 블루스>는 힙합 대마왕 주혁을 기억하는 공부 대마왕 시완의 콘서트 형식으로 극이 진행된다.
시완과 주혁의 우정이 아시아와 유럽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나라 터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나래이션과 노래를 모두 두 배우
김다흰 전석호가 맡아한다. 패닉의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미스터 투의 ‘하얀 겨울’, '스탠드 바이 미 (Stand by me)' 등
익숙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작품에 대한 평이 갈리는 지점은 주인공들의 우정은 우정 이상의 동성애로 볼 것인가? 인간애로 볼 것인가? 이다.
물론 그게 이 작품의 핵심은 아니다. 다만 연극을 보면서 이들의 우정은 사랑보다 달콤한 ‘터키 우정’이 아닐까? 란 생각을 조심히
해보게 됐다. 내려먹는 커피가 아닌, 한약을 달이듯 달여서 먹는 달임식 커피인 터키 커피, 터키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숲이 함께 있을 때 만날 수 있는 터키쉬 블루 색, 모든 걸 다 끌어안는 터키 사람들의 특징들이 이런 생각을 부채질 했다.
<인디아 블로그> <유럽 블로그>는 보고 나면, 여행에 대한 충동질을 부채질 한다면, <터키 블루스>는
오래 전 사소한 오해와 이기심으로 헤어진 친구들을 찾아나서고 싶어진다. 이게 이 작품의 숨은 매력이다.
김다흰의 얼굴에선 이전 시즌에서 볼 수 없었던(?) 광채가 난다. 마치 유재석이 독보적인 사회자로 이름을 알린 뒤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정적인 기운이다. 김다흰의 안정적 기운이 터키 블루스의 색깔과 너무도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무대 뒤를 감싸고 있는
배우 전석호의 열정과 끼가 작품을 빛나게 한다. 일명 악어떼로 설정된 박동욱, 임승범, 김현식의 소소한 활약도 웃음을 준다.
다만 연주를 맡은 권준엽은 연주만 할 것인지 작품 안에 들어 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더 필요해 보였다.
무대 정 중앙에서 표정 변화가 없이 연주만 하기엔 관객들의 시선을 자꾸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10월 27일까지 연우소극장.
■ ‘꺼지지 않는 촛불 같은 존재’를 기억하다 <앵화원>
‘예술이란, 연극이란, 배우란, 그들을 보러 온 관객은 모두 꺼지지 않는 촛불 같은 존재이다.’
‘로가로세 프로젝트’의 연극 <앵화원>(작가 한재은, 연출 이재윤)은 그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연출가 이재윤은 SNS에 “내가 연극 "앵화원"을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는 "연극"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분명 체홉은 세상을 바꾸었고 홍해성은 조선을 바꾸었다. 관조적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며 질문을 한다면 반성 할 것이 많구나...
원론부터 고치자.”란 말을 올렸다. 연출의 말처럼 연극이란 예술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작품은 체호프의 ‘벚나무 동산’ 을 <앵화원櫻花園>이란 제목으로 한국 최초로 상연하기 위해 찾아온 연출가 홍해성,
배우 김우진, 윤심덕을 무대로 불러낸다. 이 후 곧 철거 될 극장의 청소부와 청년, 극장을 영화관으로 바꾸려고 하는 상인이
이들의 공연에 참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 액자식으로 교차하며 진행된다.
1926년 토월회에서 벚꽃 동산을 준비하는 배우들과 1957년 극장 밖의 현실이 흥미롭게 중첩된다. 만년 대학생 빼차(트로피모프),
신흥상인 로파힌, 노비 피르스만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인 인물들이 관객들에게 생각꺼리를 던져주는 식이다.
발전 될 소지가 많은 연극이다. 억압받는 조선인, 막막한 황야를 달리는 윤심덕의 내면을 현대의 예술가들에게 투사해 보여 준 점은
좋았으나 김우진, 홍해성의 이야기가 후반에 가서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성급히 마무리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액자식 구성의
접점과 메시지가 보다 단단하게 구축됐으면 한다.
다리정기공연시리즈, 여섯 번째 이야기, 당신의 시공간 속 그 장면을 켜라 – Let’s turn on ! 시리즈 첫 번째 작이다.
<앵화원>은 1930년대 선구적 창작인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2013년의 무대로 부활시키는 스위치 : turn on 1 로 기획됐다.
10월 13일까지 서울 마포구 동교동(홍대인근)에 위치한 '가톨릭청년회관 다리'에서 공연된다.
배우 장용철, 이종무, 이기욱, 황건, 박은정, 박정길이 출연한다.
Let’s turn on ! 시리즈는 안톤 체홉의 작품 ‘갈매기’ 의 주인공 뜨레쁠레프의 죽음 이후를 상상하는 스위치 : turn on 2 <체홉적 상상>,
잊지 말아야 할 아픈 과거, ‘위안부 문제’ 를 현재의 우리가 함께 고민해보는 스위치 : turn on 3 <빨간 목도리>, 옛 이야기 ‘아기장수설화’ 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참모습을 꺼내어보는 스위치 : turn on 4 <아기장수클럽>으로 이어진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