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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조건, 울림이 있는 배우가 되는 법

마침내 꿈을 닮아가다님 | 2015.07.23 15:50 | 조회 319



 

 

Well-Expanded Actor
Kwon, Haehyo


권해효는 자신은 배우이기 전에 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라고 얘기한다. 그 한 사람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깨어 있으려고 노력한다. 강건한 신념을 바탕으로 뿌리 깊게 삶을 지탱해온 사람, 권해효는 보다 깊고 넓게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권해효 특유의 표정을 좋아한다. 굳게 다물었지만 삐죽거리는 입, 그리고 그 큰 눈이 튀어나올 것마냥 ‘승질’을 내는 모습까지, 화를 내고 있지만 그의 그런 모습이 밉거나 무섭지 않다. 화를 내도 뒤에선 자신이 더 아파할 것만 같은 선배이자 내 넋두리를 모두 들어주고 또다시 화를 내며 정신 차리게 만들어줄 것만 같은 모습이 바로 배우 권해효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 표정 뒤엔 눈가와 입가의 주름이 길게 잡히는 환한 미소가 뒤따라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구설수 없이 배우로서의 삶을 영위해온 그에 대한 믿음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긴 시간 동안 수많은 배역을 해오면서 원조 미친 존재감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권해효는 늘 우리 곁에 가깝게 자리매김한 배우이다.


지난해 <제보자>, <피끓는 청춘> 등의 영화와 <빅맨>, <내 생애 봄날>, <비밀의 문> 등 다수의 드라마로 바쁘게 지냈던 그는 올해가 시작하자마자 영화 <쎄시봉>에서 음악 감상실 쎄시봉의 김 사장 역할로 관객을 마주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그라운드의 이방인>에서는 내레이션을 통해 관객과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꽤 바쁜 시간을 보낸 그가 희끗희끗하고도 부스스한 머리를 머쓱하게 만지며, 정갈하게 머플러를 맨 모습으로 스튜디오에 들어왔다. 공간을 울리는 그의 목소리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배우의 조건
- 울림이 있는 배우가 되는 법


작년부터 무척 정신없이 지내오셨는데 바쁜 일정은 마무리되셨어요?
지금은 영화 <그라운드의 이방인> 개봉만 남겨두고 있어요. 또 촬영은 2년 전에 했는데 아직 개봉하지 못한 영화가 올봄에 개봉을 앞두고 있구요. <소수의견>이라고 용산 참사를 모티브로 한 영화인데 투자, 배급 쪽에서 눈치 보는 게 많았는지 찍은 지 만 2년이 될 동안 개봉을 못 했어요. 그 영화 보면 웃길 거예요. 지금보다 흰머리가 덜할 테니까. (웃음)

 




영화 내레이션은 <사이비> 이후에 <그라운드의 이방인>이 두 번째인 거죠?
네. 이 영화가 1982년,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이야기에요. 우리나라 야구에 관한 이야기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재일동포 야구 선수들이 저와 동갑내기 친구들이에요. 프로야구가 900만, 1,000만 시대가 되면서 엄청 인기를 끌고 있잖아요. 지금의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에는 고교 야구단이 있었어요. 그리고 1980년 초까지 한국 야구 발전에 많은 밑거름이 되었던 게 선진야구였던 재일동포 야구단이었구요. 요즘은 야구를 스트레스 푸는 수단으로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게 나쁜 건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스포츠 그 자체로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이 영화처럼 야구를 통해서 몰랐던 우리의 역사, 재일 교포의 삶 등을 곱씹어볼 수 있으면 좋겠구요.


<그라운드의 이방인> 배경인 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볼게요. 고등학생 때 연극영화과가 아니라 회계학과 지원하려고 했다가 친구 따라 연극영화과에 원서를 넣었다고 알고 있어요. 순간의 선택으로 지금 이 자리에 계신 거네요? (웃음)
원서 쓰기 전까지 연영과에 대한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연극영화과가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던 시절이에요. 고등학교 때 문예부 선배가 연극영화과에 가는 걸 보고 그런 과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는 대다수 사람들 인식 속에 연예인은 딴따라, 양아치들이나 하는 거라는 생각이 있었으니까요. 


배우의 꿈을 안고 가신 건 아니었던 거예요?
네. 그런 꿈은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 문예부였는데 그때 또래 친구들끼리 문학과 영화에 대한 관심이 많으니까 그런 이야기는 많이 했죠. 연영과 간다고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집에서 반대해서 못 갔고 저는 점수에 맞춰 들어갔구요.

 

 

연기를 이렇게 오래 할 거라고 예상하셨어요?
그걸 누가 알았겠어요? (웃음) 그런데 대학 다니면서 저한테 큰 힘이 됐던 게 공부였어요. 무척 재미있었고 그래서 열심히 했어요. 대학 2~3학년 때는 내가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 갔겠다고 생각할 정도루요. 2학년 1학기 때였을 거예요. 남자 배우가 모자라서 처음으로 연기했는데 그때 최고 점수를 받았어요. 그 이후에 다른 작품을 공연하는데 공연 끝나고 교수님이 들어와서 했던 첫 마디가 “너 연기해라”는 말이었어요. 그게 제가 이 직업을 계속하게 된 첫 계기였던 것 같아요. 배우를 꿈꾼 건 아니었지만 연기 하는 게 좋았고, 하면서 남보다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무탈하게, 늘 그 자리에 계셨던 것만 같은데 슬럼프 같은 게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배우는 늘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요. 작품이 끝나면 잠재적 실업자죠. 작품 속에서 맡은 역할이 없어지는 순간 늘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데, 그런 공포와 함께 스스로 대견할 때가 있어요. 하루에 몇백 명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쇼 비즈니스 현장에서 20년 넘게 남의 것을 뺏지 않고 살아왔다는 점이요. 배우라는 직업의 가장 좋은 점은 이거예요. 누구와 경쟁하지 않아요. 나와 경쟁할 뿐이죠. 20년 넘게 다른 짓 안 하고 배우로서,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누군가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늘 행운같이 느낄 때가 많아요.


그런 행운은 무엇 때문에 가능했을까요?
무엇 때문에 가능했을지 생각해보면 놓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어요. 저에게 제일 중요한 건 순서에 준한 일이에요. 제가 어느 작품의 무척 조그마한 역을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얼마 있다가 훨씬 더 괜찮은 작품의 더 큰 배역이 들어왔어요. 많은 사람들은 고민을 시작할 테지만 저는 고민하지 않아요. 제일 먼저 나를 컨택한 사람에 대한 예의고, 내가 선택한 일이잖아요. 마치 내가 굉장한 걸 놓치는 것 같고 아쉬울 것 같지만 사실 다 똑같은 일이에요.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원칙이기도 한가요?
늘 누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게 맞다고 알고 지내왔어요. 사실 이건 배우로서, 또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바보 같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일이에요. 그것도 맞는 말이구요. 정답은 없는데 제 나름대로는 그래요. 제가 잘생긴 것도 아니고 키가 큰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 온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20년 넘게 연기를 해오시면서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야구로 얘기하자면 좋은 투수는 승수가 많은 투수냐? 아니거든요. 승패를 떠나서 꾸준하게 마운드에 오르는 거. 마운드에서 끝없이 공을 던지는 투수가 좋은 투수의 조건 중의 하나예요. 배우가 작품 하나 찍고 이미지 변신 하겠다고 몇 년 동안 활동하지 않는 건 무척 웃긴 일이거든요. 이미지 변신을 한다는 사람들이 광고 속에서는 늘 똑같잖아요. 똑같은 이미지를 소비하면서요.


꾸준함 외에 배우가 갖춰야 될 게 또 있다면요?
그게 사람마다 달라서요. 요즘 저는 좋은 작품을 만나 좋은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좋은 연기의 기본은 좋은 작품이거든요. 좋은 시나리오에서는 배우가 연기를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나쁜 시나리오에서는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없어요.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 전개나 서사의 허접함, 막장 코드 등 반짝하는 아이디어만 있는 시나리오가 있잖아요. 작가로서, 감독으로서 요만큼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기지 않은. 배우로서 가장 위험한 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이건 삶을 살아갈 때도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인데 이 역할은 당신이 딱이라는 말이에요.
 
배우로서 무척 기분 좋은 말 아닌가요?
그렇게 들릴 수 있겠죠. 그런데 이 말은 그 사람이 여태까지 해왔던 것을 차용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거죠. 제 경험을 통해 봤을 때 이 말 때문에 시작한 연기가 좋았던 걸 본 적이 없어요. 배우뿐만 아니라 인생에 살아가면서 경계해야 하는 점이고, 내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보는 게 필요한 거죠.


배역에 몰입하는 것과는 별개로 현실 감각이 무척 뛰어난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배역 몰입도가 별로 없어요. (웃음) 어떤 배우는 배역을 맡는 순간부터 그 인물이 되겠다고 메소드 연기를 펼치는 사람이 있기도 해요. 저는 그런 스타일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서. 서정적인 노래를 들었을 때 그것만으로 감동이 쫙 전해지잖아요. 우리가 감동 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진 않잖아요. 똑같아요. 배역이 처한 상황이 이해 돼야 하는 거예요. 슬픈 연기니까 얼굴에 우울을 써놓고 일부러 과장되게 잡을 필요가 없는 거죠.  


이런 연기 철학이 특유의 현실적이면서도 편안한 연기의 근간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사실 감정에 치우친 연기가 어떤 오해에서 시작되느냐면요, 배우는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착각 때문이에요. 감정이라는 건 보고 있는 관객들이 느끼는 몫이고 배우는 극 중에서 대사를 수행하는 사람인 거에요. 드라마에서 결혼을 반대하는 엄마와 딸이 싸우고 있어요. 딸이 “엄마는 내 맘도 몰라!” 그러면서 철철철 울고 난리가 나잖아요. 보면서 정말 막장이고 미쳤다고 생각하지 절절함은 못 느끼잖아요. 여기서 딸 배역을 맡은 배우는 화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내 사랑을 이해 못 하는 엄마를 어떻게든 설득시키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엄마 역시 철부지 딸이 설득이 안되니까 속상하고 화가 나는 과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감정을 표현하는 게 목적이 되어 버리니까 정말로 저 둘이 모녀 사이일까, 애정이란 게 존재하는 걸까 되묻게 되는 거죠.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을 때 그 연기에 울림이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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